메론 소다 이하토브

零/壱2020. 6. 20. 16:23

눈을 깜빡인다.

흐릿하게 뜬 시야로 인영이 있다. 몸을 돌리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멈추어 있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자 맞은편의 사람 쪽에서 알아챘는지 자신을 불러 왔다.

 

츄야 군, 깼구나.”

 

부드럽고 곱실거리는 금발이 이쪽으로 기울어진다. 평소에는 웃음을 담뿍 담은 토끼풀 색 눈은 담담하고 침착한 빛을 띠고 이쪽을 향하고 있다.

경애해 마지않는 선생의 드문 얼굴을 보고 몸을 바로잡아 일으켰다. 어쩐지 우수에 찬 눈은 사이다 병에 비친 밤하늘을 닮았다. 가느다란 두 다리를 노래처럼 흔들며 앉은 그는 창밖을 보고 있다.

 

수도 없이 읽은 책 속의 장면이다. 가장 존경하는 작가의 유고로 발견된 원고에서살아서 낼 수 없던 책의 단편이다.

 

선생님, 이건……

, 하지만 걱정하지 마. 꿈이니까. 나는 중간에 너를 혼자 두고 내리지 않아. 열차와 함께 이하토브까지 갈 거야.”

 

그를 따라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차는 달리고 있지 않다. 애초에 지금 있는 곳이 열차 안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전구 하나로 밝힌 어스레한 실내에서 보이는 창밖은 호수처럼 펼쳐진 밤하늘이었다.

 

분명 츄야 군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할 거야.”

 

그것을 보물처럼 말하는 소년은 오라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끼는 것을 내어놓듯 상냥한 목소리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그 눈에는 동시에 슬픔이 가득……

 

분명 아주 마음에 들 거야.”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년은 다시금 말한다. 손을 뻗어 맞잡고, 쥐고 있던 무언가를 이 손에 넘겨주었다. 손을 펴면 그 안에는 차갑고 동그란 유리구슬이 있다.

우주를 사랑한 동화작가의 이상향을 굳혀놓은 것 같은 물건이었다. 작고 투명한 우주본이 체온에 데워져 가고 있었다.

 

, 선생님 말씀대로야.”

 

손에 든 구슬을 이리저리 굴리다 삼켰다. 마주 앉은 이도 놀라는 기색 없이 그제야 소년답게 미소 지었다.

 

선생님의 이하토브가 어떨지 아주 기대되는걸.”

 

삼킨 구슬은 메론 소다의 맛이 났다. 덜 녹은 아이스크림 같기도 했다. 차갑게 녹는 꿈속에서 달리지 않는 열차는 고래 울음소리를 닮은 기적을 울렸다.

 

정말 고마워.”

 

우주가 스며 다시 눈을 감았다. 도착하거든 깨워줄게, 그 목소리에서는 사과의 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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